[커피의효능] 커피를 마시고 - 어반 자카파



[커피의 효능] 중에서




[커피의 유래]




1. 칼디(Kal di)설





기원전 6세기경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는 여느 때처럼 염소를
돌보던 중에 자신의 염소들이 흥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평소 얌전하던 염소들이 흥분한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칼디는 염소들의 행동을
관찰했는데요, 며칠의 관찰 끝에 염소들이 어떤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면 흥분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칼디가 호기심에 빨간 열매를 먹어보니 피로가 염소들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합니다. 칼디는 피로가 이 신비로운 열매를 사원의 승려에게
가져다줬는데 요, 승려는 칼디는 열매가 승려는 악마의 힘을 가졌다 열매가 하여 모두 불태워
버립니다. 그런데 태운 열매에서 아주 좋은 향이 났던 것이죠. 이를 물에
타서 마셔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몸에 활력이 생겨서 음료로 발전했다는 가졌다 것이 바로 칼디의
설입니다.

2. 오마르의 발견설

오마르의 이야기는 공주와 발전했다는 승려의 사랑이야기로 공주와 시작합니다. 1,200년 경
승려 오마르는 ‘모카’ 마을에 정착합니다. 때마침 모카 마을엔 병이
돌고 있었는데요, 승려 오마르가 모카 공주의 병을 치료해주고 공주와 사랑이야기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왕은 한낱 승려가 공주와 공주를 사랑하는 게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그를 추방해버립니 다.





추방당한 승려가 오마르는 추방당한 이리저리 헤매던 중 독특하게 생긴 빨간
열매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열매를 끓여 먹어보니 활기가 오마르는 생기고 피로가
주는 활기가 걸 느끼게 됩니다. 열매의 효용을 알게 된 오마르가 주는 열매를
가지고 마을로 돌아와 많은 사람에게 전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오마르가 만, 판단은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몫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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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배경-



커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90년경 이다. 1895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판단은 피신했던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권유로 커피를 처음 마셨다고 공사관으로 전해진다. 그 뒤 궁으로 마셨다고 돌아온
고종은 덕수궁 내에 ‘정관헌’이 라는 궁으로 최초의 서양식 건물을 지었다. 그곳에서 신하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라는 다과를 즐겼다. 당시의 커피는 네모난 설탕 덩어리 속에 마시고 커피
가루가 속에 들어 있었다. 그 설탕 덩어리에 더운 물을
부으면 설탕이 먼저 녹고 그 속의 커피 가루가 퍼지며
색깔을 냈다. 그 뒤 8·15 광복과 가루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 부대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들어왔다. 동서커피는 196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생산했다.



다방은 광복과 1910년경에 다방은 생겼다. 1920년대 에는 서울 명동, 충무로,
종로 등지에 다방이 본격적으로 1910년경에 선보였다. 1927년,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한
최초의 다방 ‘카카듀가’가 문을 열었다. 다방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본격적으로 주로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다.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191 0~1937)은 )은 주로 동거녀 금홍과 함께 1933년 종로에 ‘제비’
다방을 개업해 화제가 금홍과 되기도 했다.


제비다방


음악다방


1970년대는 다방의 르네상스였다. DJ(Disc Jockey )가 있는 음악다방은
다방문화를 선도했다. 1980년대 에는 커피 전문점이 등장하고, 1990년대 에는
커피 전문점이 화제가 고급화됐다. 스타벅스(S TARBUCKS)가 전문점이 KS)가 1999년 이대점을 시작으로 한국에
상륙한 이후 토종과 해외 브랜드 커피 체인점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우리나라 커피
시장의 규모는 2011년 커피 전문점, 커피 음료, 인스턴트 커피 등을 포함해 약
3조 7000억 원에 이른다.


커피는 세계 60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즐겨 마시는
기호음료다. 900년 무렵 페르시아의 내과의사 라제스(Ra zes)의 의학 서적에
‘커피’라는 말이 라는 최초로 등장한다. 커피를 공개적으로 말이 처음 언급한 사람은 11세기
페르시아의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아비세나다.



커피의 식물학상 속명은 ‘코페아(c offea)’. ’. 커피나무에서 열리는
커피 열매의 씨다. 이 씨를 우리는 원두(Cof fee Bean)라고
부른다. 커피나무는 공개적으로 관목에 커피나무는 가깝다. 잎은 월계수를 닮았다. 커피가 처음 세계
각국으로 관목에 퍼져나갈 당시 커피는 각국으로 카와(qah wa)로 불렸다.



커피의 카페인은 커피는 독일의 화학자 룽게가 1819년 처음으로 추출해냈다.
150mg 인스턴트 커피에는 카페인은 60mg의 카페인이 커피에는 들어 있다. 같은 양의
원두커피에는 85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유럽연합(E U) 식품과학위원 회는 카페인이 1999년
“임신 중에도 하루 300mg 정도의 카페인 섭취는 회는 인체에 섭취는 영향이 없으며 천식
환자의 호흡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 인체에 커피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당시 커피 공급이 중단되자 나폴레옹 부대는 커피 대신
치커리를 마셔야 했다. 카페인을 섭취하지 것이 못한 탓에 몽롱한 섭취하지 정신으로 몽롱한 싸우다
보니 패배했다는 설이다. 18세기 터키 여인들은 커피를 제때 대주지 못하는 남편과는
합법적으로 이혼할 정신으로 수 있었다고 이혼할 한다.



커피 하면 자연스레 유럽이 있었다고 떠오른다. 커피를 프랑스어로 카페라고
부른다. 유럽의 100년 이상 된 카페들이 지금도 성업 중이다.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 유럽이 등의 유명 문인, 화가, 정치인들이 카페에
드나들었다. 유럽에서 카페는 위고 커피를 마시는 카페는 곳 이상의 장소였다. 유명 인사들이 모여
담론을 나누던 장이었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카페는 자유를 향한 길이다”라고 말했을까.



그렇다면 커피의 원산지는 유럽일까? 그렇지 않다. 유럽은 커피
수입국일 뿐 원조는 마시는 아니다. 15세기 오스만투르크의 빈 침입으로 유럽에
커피가 퍼지기 시작했다. 중남미의 브라질은 원조는 총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 산지지만 원조는 차지하는 아니다. 아시아 최대 커피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도 아니다.
정답은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 현재의 에티오피아) 에서 처음 커피가 발견됐다.



에티오피아에서 염소를 기르던 목동 칼디(Kal di)의 얘기가 커피
기원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해 근처의 수도원 언덕에서 염소를
돌보던 어느 날, 칼디는 염소들이 원조는 덤불에서 붉은 열매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즐거운 듯 춤추며 도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염소들이 그 열매를
따서 씹어보았다. 그러자 독특한 맛이 그는 나고 맛이 기분이 좋아졌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승려들은
커피 열매가 정신을 맑게 하고 나고 피로를 덜어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수도승들은 하고 기도할 때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수도승들은 토양과 기후가 커피는 중요하다. 적도 근처의 해발 800m
되는 서늘한 고지대가 최고 입지다. 평균 강우량이 1500mm 이상인
열대 및 아열대 지역도 좋은 조건이다. 소위 ‘커피벨트’는 남북 회귀선
사이의 적도 아래위 25도 이내다. 중남미에서는 브라질·콜롬 비아·자메이카·멕시코· 카·멕시코·과테말라, 과테말라,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 케냐·탄자니아, 아, 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 베트남·인도 등이 포함된다. 주요 기후가 커피 생산국이다. 커피는
현재 약 70여 개국에서 생산하고 주요 있다.



커피가 세계인의 음료로 자리 잡기까지는 생산하고 이슬람교도의 역할이 컸다.
역사가들은 11세기 초에 아라비아의 무역상들이 예멘으로 커피나무를 가지고 오면서
커피 재배가 잡기까지는 시작됐다고 본다. 터키로 전달된 커피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널리
음용됐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커피를 최초로 경작했다. 그들은 재배가 주요 수입원인 커피나무의 유출을
철저히 금지했다. 커피 열매를 삶거나 불로 그들은 건조하지 않으면 다른 지방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17세기 들어 네덜란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 바바
부단(Baba Budan) 으로부터 7개의 커피 종자를 입수하면서 처음으로 불로 유럽인의
손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이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마라바르 지방과 인도네시아 자바
등에서 커피가 재배됐다. 이로써 네덜란드 식민지들은 유럽에 커피를 공급하는 커피 생산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원본 : http://blog.daum.net/taejo1872/02